- 지적장애인들도 자립생활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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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지적장애인 당사자 운동 ‘피플퍼스트’ 소개
지적장애인 자립생활 소개한 책 ‘좋은 지원’ 번역 출간- 2013.09.16 18:56 입력
![]() ▲‘일본 피플퍼스트 초청 강연회’가 16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동문장애인복지관 주최로 열렸다. |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일본의 지적장애인 당사자 운동 ‘피플퍼스트’가 국내에 소개됐다.
‘일본 피플퍼스트 초청 강연회’가 16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동문장애인복지관 주최로 열렸다.
일본의 지적장애인 당사자 운동인 ‘피플퍼스트’는 2004년 만들어졌다. 현 일본 피플퍼스트 회장이자 지적장애인 당사자인 사사키 노부유키 씨는 현재 일본 전역에 800여 명 정도의 지적장애인 당사자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사사키 씨는 “나는 ‘지적장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운을 떼며 강연을 시작했다.
“1995년 캘리포니아 피플퍼스트 대회 중 다니엘 메도의 ‘건강해지는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자기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장애인이 몇 년 동안 했던 말이지만 당사자의 그 한마디가 너무 소중했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점차 ‘지적장애인’으로서의 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사사키 씨는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자립생활하는 동료들은 자립생활을 하라고 했고 집에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라며 “그러나 자립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피플퍼스트 운동 강연을 해도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2002년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사사키 씨는 “자립생활하면서 방세·전기세·수도세 내기를 비롯한 금전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고 했던 동료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면서 “생활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사사키 씨는 그룹홈에 살다가 자립생활을 하게 된 야스이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야스이 씨는 뇌성마비와 지적장애가 있는 중복장애인으로, 그룹홈에 살던 당시 법인 이사장이 그를 침대에 묶어놓고 수면제를 먹이는 등의 학대를 가하기도 했다. 이를 전해 들은 사사키 씨는 이것은 명백한 학대라고 생각했고 야스이 씨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게 됐다.
사사키 씨는 “야스이 씨는 침대에 묶이고 수면제를 먹였던 이사장의 행위에 대해 처음엔 자신이 잘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현재는 그것이 학대였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야스이 씨는 이후 자립생활하는 선배 집에 방문하기, 요리 만들기, 여가시간 이용하기 등 3개월 동안 진행된 자립생활기술훈련을 통해 마침내 자립생활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사사키 씨는 “자립생활기술훈련 중에는 ‘여가시간 이용하기’를 통해 노는 시간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을 배우는데 ‘이것이 정말 좋다’는 것은 그룹홈, 시설에서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할 것”이라며 “스스로 활동보조인을 이용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기에 자립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라고 밝혔다.
사사키 씨는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은 활동보조인이 24시간 필요하지만 24시간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라며 “일본에선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이 활동보조 24시간이 필요하다며 현재 전국적으로 소송을 걸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선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사사키 씨는 “당사자라는 생각만으로 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으며 당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해야 세상은 바뀐다”라며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자각하는 것, 나의 문제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 문제를 사회화시켜 마침내 세상을 바꿔나가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한국의 경우 부모님과 같이 살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활동보조 시간이 굉장히 줄어드는데 일본은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사사키 씨는 “부모님과 같이 살면 24시간은 못 받으며 시간이 굉장히 줄어든다. 그러나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 24시간 지원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이 활동보조 자부담이 있다.”라고 답했다.
“활동보조 시간 몇 시간 받는가”라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사사키 씨는 “현재 한 달에 15시간 받고 있는데 충분하진 않다. 지체장애와 지적장애가 중복으로 있는 사람 중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사람은 하루 13시간까지 받는 사람도 있고 자립생활하는 사람 중엔 24시간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 24시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체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거의 못하는 사람들인데, 시설이나 병원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라고 답했다.
또다른 참가자가 “최근 일본에서 장애인종합복지법이 제정된 것으로 아는데 제정 직전 지적장애인에게 쉽고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며 회의 중간에 ‘브레이크’ 판을 들어 (설명을 위해) 회의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라는 사실관계를 묻는 말에 사사키 씨는 “실제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이날 행사는 사사키 씨에 이어 책 『좋은 지원』 저자이자 일본의 히노 시와 타마 시를 중심으로 ‘가이드헬퍼’로 활동하고 있는 테라모토 아키히사 씨의 강연이 이어졌다.
테라모토 씨는 “일본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시마다 있는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30년 전부터 신체장애인 활동지원이 활발히 이뤄진 곳”이라면서 “일본은 25년 전부터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시작됐으나 실질적으로는 10년 전인 2003년, 국가가 지적장애인에게도 활동보조 파견을 시작하면서 센터도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을 후원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테라모토 씨는 “일본 전체에 54만 명 정도의 지적장애인이 있으며, 동경엔 2만 7천 명의 지적장애인이 산다”라며 “전체 지적장애인 중 13만 명이 시설에 있으며 그 외엔 부모님과 살거나 그룹홈에 있다. 현재 소수의 지적장애인만이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테라모토 씨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지원이 시작된 2003년 전에도 혼자 사는 지적장애인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금전관리, 식사 준비 등이 가능했던 지적장애인이었다. 필요에 따라 자원봉사를 이용하기도 했다.”라며 “따라서 그 외의 지적장애인이 혼자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에 2003년 제도화되기 전까지 지적장애인은 가족이 전부 보조하거나 집에 있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테라모토 씨는 “그러나 지적장애인은 몸도 건강하고 손도 쓸 수 있는 등의 이유로 활동보조 시간이 나오기가 힘들었다”라며 “휠체어 미는 사람은 필요 없어도 지적장애인에겐 금전 관리, 글을 읽고 이해시키는 사람, 작업장까지 데려가고 일하는 도중 생기는 문제에 대해 상담을 지원해주는 사람 등 각자에게 맞는 활동보조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테라모토 씨는 현재 24시간 활동보조를 이용하는 지적장애인 ㄱ씨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적장애인의 활동보조 특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ㄱ씨는 일주일에 나흘은 작업장에 다니며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문장이 아닌 단어만을 사용한다. 예를 ‘밥 만들어 달라’고 할 땐 ‘밥’이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테라모토 씨는 “ㄱ씨는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하기에 정해진 활동보조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 거는 것에 두려워하며,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이는 자립생활이라기보다 활동보조인과 함께하는 생활이라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가 ‘커피’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이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건지, 커피를 사달라는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은 ‘커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용자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고 그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커피’가 아닌 커피 회사 이름만을 댄다든지, 커피 용량을 말하면 알 수 없다. 따라서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는 둘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똑같은 활동보조인이 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테라모토 씨는 “자립생활은 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활동보조인이 매일 바뀌다 보니 여기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온다”라며 “지적장애인 이용자가 월요일에 있었던 일을 화요일에 온 활동보조인에게 똑같이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것이 마치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보일 수도 있는 거다. 월요일에 오는 활동보조인이 화요일에 오는 활동보조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전해야 하는데 사실 이러한 연계가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테라모토 씨는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로서 사사키 씨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당사자 운동에서의 ‘당사자 발언’이 갖는 의미에도 물음을 던졌다.
테라모토 씨는 “피플퍼스트가 당사자 운동인데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사키 씨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라며 “그런데 ‘이야기를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으며 그 이유가 나의 행동과 말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테라모토 씨는 “지적장애인 당사자 운동에서 당사자가 목소리 내는 것은 중요하다”라며 “그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은 괜찮고 그렇지 못한 장애인은 괜찮지 않다는 판단은 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성년후견인 제도에 대한 물음에 사사키 씨는 “피플퍼스트 자체가 인간의 의미를 중요히 여기기에 성년후견제도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답했으며 테라모토 씨 역시 “일본에도 성년후견제가 있는데 이는 당사자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데 당사자를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이 책을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이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며, 테라모토 씨가 이 책을 쓴 이유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사사키 씨의 생각이 궁금하다”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사사키 씨는 “지적장애인 내부에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가 잘 정해지지 않았던 와중에 이 책이 나와서 사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저자인 테라모토 씨는 “이것은 장애인 당사자를 대변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을 쓰려고 했으며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좋지 않은 부분도 있겠으나, 장애인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전에 일본에 지적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기반으로 있었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이날 강연회는 네 시간가량 진행되었으며 많은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해 자립생활에 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이날 강연회는 네 시간가량 진행되었으며 많은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자립생활에 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
비마이너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