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목소리 알리기 위해 광장 나서보지만
1인 시위도 힘들고, 문화 행사도 거부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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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있다. 이들 광장엔 월드컵의 열기를 만끽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는가하면,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촛불을 든 사람들로 넘쳐나기도 한다. 광장은 그야말로 문화 공간이자 소통의 장인 것이다. 그런데 2010년 현재, 장애인들에게 광장의 의미는 어떠할까. 이명박 정부가 장애인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장애인들이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은 지속적으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문제점을 호소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인 '장애인 활동보조살리기 신문고를 울려라' 행사와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지침 개선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위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홍구 회장이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벌인 ‘2010년 활동보조서비스 지침 철회 요구 릴레이 1인 시위’가 첫 시작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세운 올해 활동보조서비스 지침에 뿔난 장애인들이 시민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 개악 지침’에 대해 알리겠다며 움직임에 나선 것이다. 한때 장애인들은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보장 10만인 서명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남병준 조직국장은 "광화문광장 주변은 우리들이 이동권 투쟁을 외쳤던, 우리에겐 아주 중요하고 상징적인 곳"이라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제하고 있는 이 광장이 마치 장애인의 현실을 대변해주는 곳 같아, 우리의 원성을 고하고자 이곳에 모이고 있다"고 광화문광장을 투쟁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남 국장의 언급처럼 광화문광장 주변은 장애인들의 대정부투쟁 근거지였다.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확보 투쟁에 나선 장애인들이 매주 진행했던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 행사는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열렸다. 이후 장애인들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에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까지 이동하는 버스를 타고, 약 4년간 버스타기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장애인들은 2007년 7월부터 매주 수요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장애인연금제도 도입과 탈시설 권리보장, 장애인의 주거권 보장 등 장애인 생존권 7대 요구안을 내걸고 '생존의 횡단보도 건너기' 투쟁을 진행했다. 그 해 9월 5일부터 8일까지 3박 4일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선 장애민중행동대회 노숙투쟁이 진행되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활동보조서비스 지침 개악이 철회되고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제대로 확보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며 광화문광장을 계속해서 장애인 투쟁의 근거지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1인 시위 할 수 없는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장애인들을 가장 주의 깊게 지켜보는 쪽은 경찰이다. 장애인들이 광화문광장, 특히 세종대왕동상 앞으로 접근하는 것조차 막아 항상 마찰이 생기곤 한다. 또한 개인의 기본적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고 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규제 대상도 아닌 1인 시위마저도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는 사례가 발생되기도 한다.
지난 3월 17일 경찰 20여명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송성민 상임대표 주변을 에워쌌다. 송 대표는 혼자 피켓을 들고 시위를 진행했지만 경찰들은 송 대표에게 자리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 취재를 위해 모인 기자들이 1인 시위를 제지하는 이유를 묻자, 한 경찰 관계자는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서 있는 것”이라며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에도 1인 시위에 나선 장애인을 막는 경찰의 제지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신문고 행사에 대해선 경찰은 원천봉쇄를 감행한다. 장애인들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신문고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줄지어 방패를 들고 막아서는 경찰들과 충돌하곤 한다. 광장에 진입도 하지 못한 채 경찰에게 막혀버리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출입을 막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항의하지만, 경찰측은 “장애인들이 1인 시위와 행사를 가장한 불법 집회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담당하는 종로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그냥 건널목을 통과한다면 당연히 막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광장 내에서 개별적으로 모여 집회 시위를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차단하는 것"이라며 "맹목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집회 신고도 안하고 일반 차량들의 통행도 못하게 하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혹시 생길지 모를 집단 집회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인 것이다.
이 관계자는 “만약 공식적으로 집회 신고를 낸다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보호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광화문광장 내에서의 집회는 가능한 걸까. 집회 신고 등을 처리하는 종로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광화문광장은 광장조례 규정 하에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서울시가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사용 허가가 내려져야 집회 신고가 가능한 곳"이라며 "먼저 서울시에서 광장 사용 허가를 받아야만 우리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서울시의 허가가 없으면 경찰 측에서 단독적으로 집회 허가를 내 줄 권한이 없다는 것.
이어 이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내에서 집회 신고가 된 적도, 집회가 열린 적도 없다"며 사실상 광화문광장 내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시사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광장조례)'에 따라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위한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행사에 관한 허가도 떨어지기 어려운 게 광화문광장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난 4월 광화문광장 내에서 ‘장애인인권사진전’을 개최하려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해 행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조직국장은 "어떤 장소에서든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선전용으로 사용하고 시위나 집회를 금지하며, 마치 권력자들이 꾸미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화문광장, 시민 품으로 언제 돌아오나
시민의 공간이어야 할 광화문광장. 언제쯤 마음대로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까. 현재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내 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서울시의회는 당초 우선 처리하기로 했던 '서울광장의 사용과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안'뿐만 아니라,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세운광장에 관한 조례를 통합한 ‘열린 광장의 운영과 관리에 관한 조례’를 만들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 광장의 운영과 관리에 관한 조례’가 통과된다면 사실상 금지됐던 집회를 비롯해 시민 행사 등이 열리는 공간으로 재탄생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현 정권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화요일을 제외한 매주 평일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고, 매주 화요일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살리기 신문고'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