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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는 것은 타인의 거짓이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

 

우리 집 딸아이와 남편은 참기름을 엄청 좋아한다. 고기를 먹을 때도 살짝 찍어 먹는 수준이 아니라 샤브샤브 먹는 양 참기름장에 푹 담가 먹는다. 그래서 필자는 우스갯소리로 "참기름 많이 먹어서 먹는 족족 변이 나오는 갑다."하며 쾌변을 하는 남편과 딸아이를 놀리곤 한다.

어쨌든 이렇다 보니 소주병 사이즈의 참기름으로는 사다 나르기 무섭게 바닥이 난다. 그래서 대용량의 참기름을 사다 먹는데 이게 또 문제다. 전혀 보지 못하는 필자는 그대로 사용할 경우 그 양을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일명 케찹병(과거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사먹으면 핫도그 위에 케찹을 뿌려 주었는데 그 케찹을 담아 두었던 빨간색 튜브병)을 사다가 그 병에 부어서 사용한다.그런데 이게 또 문제다.

케찹병 입구와 참기름병 입구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분명 입구를 잘 맞대었다고 생각하고 부었는데 어느새 바닥이 참기름으로 흥건하다.

병을 들고 부으면서 입구가 약간 틀어졌는지 참기름병은 한결 가벼워졌는데 케찹병은 별 무게감이 안 느껴지는 걸 보니 그게 다 바닥으로 흐른 것이다. 바닥의 참기름을 보면 아까워서 할 수만 있다면 주워 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게다가 뒷수습이 또 장난이 아니다. 키친타올 한 롤을 다 쓰고 물티슈로 두세번씩 닦아내도 그 은근한 미끄러움은 하루 정도 간다.

이쯤되면 "아이고, 앞도 전혀 못 보면서 미련하게 왜 저럴까? 그냥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담아두지." 할 것이다. 필자도 매번 참기름을 부을 때마다 "아이고, 언니 왔을 때 말할껄.' 후회하지만 어쨌든 버스는 떠났고 기억 저장공간도 고만고만하니 이런 상황을 매번 되풀이 한다.

아마 우리 식구 뱃속에 들어간 양이나 바닥에 참기름 칠한 양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다.’ 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것이 깔때기였고 그걸 케찹병에 꽂고 부으니 옆으로 흐르는 것 없이 깔끔하게 주르륵 들어간다. , 그런데 이게 또 문제다. 얼만큼 들어갔는지 확인을 못하니 케찹병을 다 채우고 깔때기까지 차도록 붓는 바람에 깔때기를 빼지도 못하고 케찹병 주둥이와 깔때기를 합체시키려는 듯 한참을 부여잡고만 있었다.

결국 재빨리 손을 움직여 깔때기에 잇는 참기름을 살려 보려고 했지만 결국 참기름은 바닥으로 낙화하고 그 향내만 남기고 버려졌다. 버려진 참기름이 아까워 마음은 속상한데 그 뒷수습까지 하려니 심신이 괴롭다. , 그런데 오늘 바닥에도 케찹병 옆으로도 단 한방울의 참기름도 흘리지 않고 옮겨 담았다. 특별한 도구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뛰어난 테크닉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쩌다 우연히 운 좋게 일어난 상황도 아니다.

분명 필자가 의도해서 행동했고 그 결과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어찌 그리 어리석었을까. 정답은 케찹병을 다 채우려 하지 않는 것.

장황하게 이 일을 적은 이유는 시각장애가 있을 때 어려움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게 어필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 방울의 참기름도 흘리지 않고 담는 순간 그동안 미련하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느꼈을 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고 대하는 인식도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잠재되어져 있는 무의식적 고정관념과 행동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양상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 케찹병을 가득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과 행동은 참기름을 못쓰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뒷수습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을 야기했다.

사람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 아닐까? 편견은 결국 다른 사람을 그르치고 자신마져 그르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호불호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독단적일 수 밖에 없다.

눈을 가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짓이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인 셈이다.

출처: 에이블뉴스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20042513303741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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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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