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문제 지닌 보조기기법과 하위 법령, 실효성은 ‘글쎄’
보조기기 지원 대상·종류 협소하고 전달체계·예산 등 구체적 방안도 부족
등록일 [ 2016년09월29일 18시46분 ]
장애인들이 겪는 사회 활동의 제약을 최소화하고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및 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아래 보조기기법)이 올해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맞춰 보건복지부도 8월 26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아래 한국장총)이 29일 서울 어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보조기기법 하위법령 제정 방안 토론회에서는 이 법의 실효성을 두고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장총이 2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보조기기법 하위법령 제정 방안 토론회.
보조기기 지원 대상, 종류 협소한 규정, 실효성 부족해
보조기기법은 기존에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했던 보조기기 사업을 총괄하는 법률로, 보조기기 지원, 품질관리, 보조기기센터, 보조기기 전문인력, 연구 육성 등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김정록 전 새누리당 의원,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 등의 입법안을 병합한 안으로, 지난 12월 29일 통과됐다.
그러나 한국장총은 보조기기법과 하위 법령에서 보조기기 지원 대상, 보조기기 종류 등의 규정이 매우 협소하게 규정돼, 법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먼저 보조기기법은 보조기기 지원 대상자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노인, 혹은 국가유공자만 포함하고 있다. 산업재해 피해자나 특수교육 대상자 등은 보조기기법 대상자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협소한 규정 때문에 보조기기법이 각 부처의 보조기기 사업을 총괄하는 기본법으로서 위상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 한국장총의 의견이다.
또한 시행규칙 3조 1항, 4조 등에 따르면 보조기기 교부 신청 대상자도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중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혹은 차상위 계층으로만 한정했다. 법과 시행규칙 이중으로 지원대상이 축소되면서 실질적으로 보조기기 지원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국장총의 지적이다.
시행규칙 2조 1항에 따르면 보조기기 종류는 개인 치료용 보조기기, 기술 훈련용 보조기기, 이동용 보조기기, 의사소통용 보조기기 등 13개다. 그러나 장애인 건강과 재활운동에 필요한 스포츠용 보조기기, 장애인 문화활동 보조기기, 교육용 보조기기 등 여러 보조기기가 시행규칙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시행규칙에 중앙보조기기센터, 지역보조기기센터 설치를 의무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보조기기센터가 설치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는 보조기기 지원 전달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또한 한국장총은 이번 하위법령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에게 보조기기 본인부담금, 수리 비용 등을 지원하는 조항이 없고, 보조기기에 대한 정보 제공도 법적 의무가 아니므로 장애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보조기기를 자유롭게 구매, 활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계, 장애계 “보조기기법, 하위법령 전면 개선 필요” 이구동성
학계, 장애계도 이구동성으로 보조기기법과 하위 법령이 장애인의 보조기기 지원을 확대하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보조기기 전달체계, 보조기기 보급과 사후관리 체계, 예산 등 전방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었다.
송병섭 대구대학교 재활공학과 교수는 “중앙과 지역 보조기기센터의 관계 설정이나 업무 협조 내용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입법 예고된 시행규칙에는 없다”라며 “지역센터의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게 하려면 지원체계와 상호 협력과 관련된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송 교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예산 관련 내용이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 보조기기법에서 제시하는 센터의 설치, 운영, 사업수행, 보조기기 보급, 대여, 사후관리 등 다양한 사업을 위해 매년 수백 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라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명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처장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보조기기를 몸에 맞추는 데는 엄청난 개조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것을 모두 자비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의 필요성에 맞게 보조기기를 변형시키거나 개조하도록 하는 내용을 보조기기법이나 하위법령에서 찾긴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최 사무처장은 “캐나다만 하더라도 3명의 전문 인력이 장애인에게 보조기기를 제공하기 위해 장기간, 지속적으로 사례관리를 한다”라며 “보조기기를 보급하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들이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자기에게 맞게끔 사례관리해주는 내용이 법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불쾌한 지점”이라고 꼬집었다.
강인학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장.
강인학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센터장은 “보조기기의 영역과 품목, 명칭과 분류를 정하는 기준이 기존 장애인복지법 65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보조기기법으로 보조기기 범주가 협소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라며 “보조기기 범주별로 보다 포괄적인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센터장은 “시행규칙에서 비용 중 일부를 개인 부담으로 명시한 내용이 있으나, 이로써 (정부가) 얻는 경제적 이익이 많지 않고 보조기기 이용자의 경제적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며 “비용 부분은 하위법령에 명시하기보다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강완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장은 “법과 하위법령에서 규정하는 보조공학사가 점자나 수화 같은 특수 보조기기 혹은 의료 기능을 수반한 보조기기를 다 다룰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보조공학사의 전문 분야를 나누고 얼마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보조공학센터는 단순한 보조기기 교부 대행의 역할밖에 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임동민 보건복지부 장애인자립기반과 사무관도 “정부도 입법 과정에서는 보조기기법의 제정을 반대했는데, 법령을 통해 서비스 확대가 이뤄지기보다 장애인복지법의 조항을 별도 법령으로 만드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라며 “하위법령에서는 전문인력 관련 내용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학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