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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부택 이용자 가족의 인터뷰 입니다.

 

 임부택 이용자는 지적장애와 지체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인으로, 간단한 단어만으로 주변과 소통합니다. 20살 무렵 큰 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지적장애로 인해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이제 50대에 접어들었고, 80대의 어머니가 여전히 곁을 지키며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연세가 많아 혼자 감당하기에는 점점 벅찬 상황입니다.

 

다행히도 오전에는 이△△ 활동지원사, 오후에는 엄△△ 활동지원사가 매일 찾아와 10년 넘게 꾸준히 부택 씨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두 활동지원사에 대해 늘 깊은 신뢰와 고마움을 전하며, 활동지원사들 역시 좋은 가족 곁에서 함께할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다고 따뜻한 마음을 나눕니다.

 

어린 시절, 가슴 철렁했던 기억들

부택이가 학교 다닐 때는 정말 힘들었어. 스쿨버스가 없던 시절이라 매일 전철을 타고 구의역까지 데리고 다녔지.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쯤 스쿨버스가 생기면서 혼자 등하교를 하게 됐어.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잘못 내린 거야. 한참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결국 18시간 만에 찾았는데, 그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지.”

 

어머니에게 임부택 씨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늘 곁에서 붙잡고 있어야 했기에, 일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이 먼저였거든. 그래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어. 낮에 아이 아버지가 일할 때는 내가 돌보고, 밤에 내가 주방일을 나가면 새벽까지 아버지가 돌보고그렇게 교대로 지켜야 했어.”

 

갓난아기 아빠에서 고등학생 아빠로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처음 오실 때는 서른일곱 살이었나?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있다고 그랬어.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지금 그 아기가 고등학생이 됐다고 하더라고. 아이고, 세월 참 빠르지.”

 

20년 전 처음 만난 활동지원사는 그렇게 세월을 함께 해왔습니다. 갓난아기를 키우던 청년 아빠에서 이제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된 그는, 부택씨 곁을 꾸준히 지키며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돌봄의 무게, 나눔의 안도감

예전에는 부모가 다 했으니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지금은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 오시니까 훨씬 편하지. 덕분에 부택이도 매일 산책하고, 많이 웃고, 훨씬 밝아졌지.”

활동지원사가 교대로 이어가는 돌봄은 어머니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웃음과 여유가 집안에 스며들며, 부택씨 역시 더 안정된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도에 대한 감사와 바람

선생님들 덕분에 내가 혼자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되잖아. 가족이 온전히 돌보고 싶어도 생계 때문에 다들 못해. 그런데 활동지원이 있으니까 서로 덜 미안하고 덜 힘든 거지. 나는 그저 이 제도가 줄어들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세상 떠날 거잖아. 부택이가 혼자 남으면 얼마나 걱정이겠어. 그래도 활동지원사들이 있으니까그나마 덜 걱정되는 거야. 형제들이 다 챙길 수 없는 세상이니까, 이런 제도가 있어서 참 다행이지.”

 

앞으로의 꿈

나는 더 바라는 거 없어. 지금처럼만 쭉 갔으면 해.”

 

20년의 동행 속에서 쌓인 신뢰와 활동지원사가 함께 지켜주는 일상의 안정.

그것이 임부택씨 가족이 바라는 미래이자, 가장 큰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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