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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인의 삶이 고통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기쁨으로 전환할 것인가

 

Good Job 자립생활센터장

김재익 박사

 

뇌성마비인의 삶이 고통이라 말하는 것은 절대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과장된 비극의 수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되는 경험의 누적이다. 몸은 쉽게 피로해지고, 이동은 늘 계산을 필요로 하며, 말은 종종 오해 속에 머문다. 병원과 재활, 행정 절차와 접근성의 벽, 부족한 돌봄 시간과 단절된 고용의 기회는 삶을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그래서 고통은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뇌성마비인의 삶의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진정 멈출 수는 없다.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가, 만약 우리의 삶이 고통의 조건 속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 삶을 기쁨으로, 비록 조금이라도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고통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고통은 단지

개인의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 우리 사회가 설계된 방식의 결과이다. 이동 차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든 도시, 뇌성마비인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발화를 기다려주지 않는 속도,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인간 자체를 평가하는 문화는 고통을 개인의 결함 그 자체로 환원한다. 그러나 인간 고통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배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환의 출발점 또한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접근 가능한 공간, 충분한 활동지원, 지속적인 의료와 재활, 안정된 주거와 고용의 기회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기쁨의 토대이다. 기쁨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가능한 삶의 조건 위에서 발생한다. 둘째, 진정한 기쁨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뇌성마비인의 고통이 심화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고립이다. 오해 속에서의 침묵, 배제와 단절은 인간을 내면으로 수축시킨다. 그러므로 기쁨으로의 전환은 연결과 참여 속에서만이 시작된다. 동료와의 자조모임, 학습 공동체, 문화 활동과 토론의 장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존재자의 회복, 즉 실존적 주체의 자각이다.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인간을 다시 사회적 주체로 세운다. 고통은 혼자일 때 무게를 더하지만, 나눌 때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조가 드러난다. 이러한 구조가 드러날 때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셋째, 모든 기쁨은 자기결정의 경험에서 싹튼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삶이 대신 결정된다고 할 때, 인간은 점차 의지를 잃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가 비록 제한된 조건 속에 있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경험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교육을 받을 권리, 노동을 할 기회, 사랑하고 관계 맺을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는 모두 기쁨의 조건들 그 자체이다. 기쁨은 절대 통제된 보호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것은 존중받는 선택 속에서만 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우리는 기쁨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사회는 종종 성공과 성취를 통해서만 기쁨을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뇌성마비인의 삶에서 기쁨은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작은 가능성의 확장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이동한 한 걸음, 끝까지 발음한 한 문장, 이해받은 한 번의 대화, 배움 속에서 발견한 한 줄의 사유는 모두 기쁨의 단서이다. 기쁨은 사실 고통이 사라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조건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때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미화할 수는 없다. 고통은 여전히 부당하며, 줄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뇌성마비인과 관련된 제도와 정책은 구조적 차별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하고, 뇌성마비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호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삶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기쁨의 가능성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항의 또 다른 형식이며, 우리 뇌성마비인의 실존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질문은 사회 전체를 향해야 한다. 우리는 뇌성마비인의 삶을 동정의 서사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서사로 재구성할 것인가.

 

사실 기쁨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조와 연결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조건 속에서만 기쁨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 비록 뇌성마비인의 삶이 고통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끝은 고통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결코 삶은 완전해질 수는 없지만, 의미 그 자체는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의미는 관계 속에서, 선택 속에서, 존중 속에서 자란다. 고통을 인정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 것, 그것이 기쁨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쁨은 거대한 기적이 아니라 작은 구조의 변화, 작은 연결, 작은 선택의 축적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그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갈 때, 뇌성마비인의 삶은 더 이상 견디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 공간 속에서 실존하는 주체적 삶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기뻐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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