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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점자를 내밀지 마셨으면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시각장애가 있으면 청력이 좋고 점자를 하며 기억력이 좋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맞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 시각장애와 더불어 뿅 하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력이 부족한 만큼 다른 기능을 대체하여 사용하다 보니 서서히 발달하게 된 것이다. 시각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점자를 익히지 않으면 점자를 모르고 신체적으로 청력에 문제가 있다면 시각장애와 무관하게 소리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장애이해교육을 갔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로 기존 체험활동 대신 점자 찍기 체험을 하게 되었다. 점자 찍기 체험 전 점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점자 프린트 물을 나눠주고 학생들이 직접 만져보도록 하였다. 점자 찍기 체험을 마치고 수업을 마무리하려는 데 참관 중이셨던 담임선생님이 점자 프린트 물을 건네며 학생들에게 읽어주기를 부탁하셨다.

점자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긴 글을 묵자 읽듯이 빠르게 읽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기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평평한데 펼쳐놓고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흔들리는 점자를 한손에 들고 읽으려니 속도는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잔뜩 기대하며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듯 했다.

하나의 언어를 쓰고 읽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것을 유창하게 읽고 쓰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실명 후 기초재활교육을 받을 당시 교육생 7명 중 필자를 포함해 두 명만이 한글 점자를 익혔을 뿐이다. 점자를 익히지 못함은 비단학습자의 노력 부족만은 아니다.

점자를 쓰고 읽기에 신체적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이 있다. 점자는 손끝으로 읽어야 하는데 당뇨병이나 굳은살로 점의 위치나 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중장년 이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의 경우 대다수가 이러한 이유로 점자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음성지원 기능을 탑재한 제품과 시스템은 점자 습득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그리고 실상 우리 일상에서 점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숫자 점자만 그나마 자주 접할 뿐 그 외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없다. 한마디로 점자를 익혀도 사용되는 곳도 없고 음성지원이 가능하니 힘들게 점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중도 시각장애인이 늘고 있다.

필자 역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그렇게 필사적으로 점자를 익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하니 점자를 배우려는 시각장애인들은 줄어들고 점자를 익힌 시각장애인들도 자주 쓸 일이 없으니 가물가물해진다.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정자 간행물을 구독하지 않았다면 필자 역시 학생들 앞에서 단 몇 줄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필자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모르는 것은 문맹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환경과 문화가 바뀌는데 구태의연하게 시각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점자를 익힐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현재 사회변화를 보면 점자보다 인터넷 활용 능력이 더 요구되며 인터넷 접근을 못하면 일상 전반에서 제약을 받게 된다. 과거 컴맹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인맹 탈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시각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점자를 내밀지는 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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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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